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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김의 종교 문화 읽기] 종교적 신뢰와 존경의 회복: 하나의 시론
  글쓴이 : 마틴 김     날짜 : 08-05-09 17:34     조회 : 137    
종교적 신뢰와 존경의 회복: 하나의 시론


                                                      -마틴김 (캘거리 한인연합교회)

이전 칼럼에도 지적했듯이, 보수적인 종교가 성장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학계에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좀 더 나아가서, 로드니 스탁 (Rodney Stark)같은 사회학자는 그냥 보수적인 종교가 아니라 유일신관 (monotheism)을 갖춘 보수 종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이상형 (ideal type)이다. 이 것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의 용어로서, 글자 그대로 현실적으로 이상형인 남자와 여자를 배우자로 만나기 힘들듯이, 개념적으로 서술된 또는 추상화된 실재가 현실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사회적 실재가 이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타이완의 사례에서 본 종교 성장

필자는 최근 기독교 선교학계에 잘 알려진 선교학 학술지인 Missiology에 타이완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서인Richard Madsen의 Democracy’s Dharma: Religious Renaissance and Political Development in Taiwan (민주주의의 다르마: 타이완의 종교적 부흥과 정치적 발전,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을 서평할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은 한 때 타이완에서 카톨릭 선교사였던 사회학자가 쓴 책으로 타이완의 국민당 정권의 지원을 받았던 기독교는 역동성을 잃고 힘을 펴지 못하는데 반하여, 왜 불교와 도교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부흥을 맞이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불교와 도교가 강한 나라에서 선교의 발판의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던 타이완의 기독교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국민당과 정치적으로 합류하므로써 전통 문화의 강한 저항을 받아 결국 정치적 힘은 물론 종교적 힘도 잃을 수 박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평 안내에는 서평하는 책의 추천 이유를 한 두줄 부가 하라고 요구했는데, 필자는 이 책은 기독교 선교에 ‘실패’한 좋은 사례로서 ‘선교학’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가 힘을 읽게 된 것은 정치적 억압이었다기 보다는 부패한 정치와의 결탁, 기독교인들의 특권적 지위 향유, 그리고 사회적 존경의 상실이 주요한 이유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불교와 도교는 자기 종교에 대한 열정적 신념, 사회적 봉사를 통한 교세 확장, 결과적으로 획득한 사회적 존경으로 최근 수십년간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 한국 천주교의 몰락과 회생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백년전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되었을 때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조선 정부의 처절한 박해로 상당 기간동안 회생활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제사문제였다. 그런데 당시 박해가 얼마나 무서웠느냐 하면 초기 서구 기독교의 순교사와 비교가 되질 않는다. 흔히들 로마 제국 치하에 있었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1천명은 고사하고 수백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 (Rodney 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 1997, pp. 179-80)에 반해, 한국 카톨릭 순교는 단기간에1만명에 이르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순교의 역사였다. 그러므로 초기 서구 기독교 교회사에 조금이라고 아는 목회자들은 순교의 역사를 말하려면 이제 서구의 초대 기독교 순교사보다는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를 언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처럼 강한 종교적 신념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정치 체제 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제사는 유교 사회를 지지하는 주요한 사회 규범체계였기 때문에 제사를 반대하는 행위는 조선 왕조라는 유교 체제의 뿌리를 송드리째 뒤흔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교 체제하에서의 천주교 박해는 종교적 신념보다는 사회 규범과 윤리를 위반한 낯선 종교에 대한 박해의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원인이 어떻든 간에, 천주교 박해는 한국의 종교사의 지도를 뒤바꿔 놓은 결과를 가져 왔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보다 1백년 앞선 천주교는 새로운 도약을 할 기회를 잃고 있었다. 그런 천주교가 최근들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체계적인 선교 정책과 함께 정의사회구제단과 같은 역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쌓고있는 사회적 존경 때문이다.

3. 한국 개신교의 부흥과 정체
한국 천주교에 반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성장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가 전래되던 19세기 말에는, 종교적 윤리를 대신하는 유교 체제가 붕괴되고, 불교는 박해를 받아 산중 불교가 된 상태였고, 천주교는 회생의 기회를 상당한 기간동안 가다려야 했던 시기였다. 이런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개신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선교 환경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해방공간과 한국 전쟁 기간동안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의 개신교인들이 대거 남하했고,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개신교는 미국적 교파주의와 분열, 그리고 보수성을 등에 없고 급성장 수 있는 발판을 확실히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개신교의 수는 과거 1천만명을 자랑하던 통계수가 8백만 정도에 머문다는 조심스런 진단이 나오고 있다. 1천만에서 8천만명으로 수가 줄어든 것은 통계상의 허수로도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 개신교의 발전이 정체되었다는 개신교 현장의 소리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과제이지만 시론적으로 세가지 요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국 개신교 자체의 변화
한국 개신교는 현재 교인들의 세대 교체 중에 있다. 한국의 대대적인 이농 현상과 도시화의 지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징조인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인구의 이동 역시 정점에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 개종자들의 수가 는다기 보다는 자기종교 내의 재생산, 즉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종교를 자식들에게 되물려 주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는 초창기의 역동성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 2세대는 결코 제 1세대가 갖는 열심을 따라하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종교든 피할 수 없는 순환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1950-70년대 경험한 전도폭발이라는 그런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둘째, 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의 복귀
종교와 문화적 가치의 속도는 혁명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설령 한국의 개신교가 주류문하인양 거만해 진다하여도 여전히 종교로서의 불교와 유교적 가치가 생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든지 부흥(renaissance)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성장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바로 그 종교가 문화적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형태든 한국 사회가 쉽게 기독교 문화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앞으로 연구 과제이지만 반 기독교 운동(anti-Chrisntian movements)같은 반기독교 정서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며, 이러한 사회적 힘 (social force)이 유지되거나 증대한다면 기존의 개신교 성장에 심각한 도전 또는 저항이 될 것이다.

셋째, 종교가 사회적 인심을 잃으면 성장도 잃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위치는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저항을 받는 위치에 있다. 그 저항이 주류 종교가 갖는 여유만만함의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태로 빠질 수도 있다. 4천만이 넘는 남한 인구에서 8백만명은 결코 주류 문화를 형성할 수 없다. 이 때 받는 사회적 저항은 결국 개신교인 수의 감소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수는 남는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개신교의 성장은 계속 어떤 형태로든 보장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무서운 변수는 개신교를 타겟으로 삼는 세속적 반기독교 정서와 운동이 거세진다면 앞으로 보수적 성향과 열정적인 선교만으로는 개신교 성장의 앞날은 물론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종교적 성장이 보수-진보라는 축으로만 왔다갔다 한다면 한국의 보수 개신교의 성장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 왜냐하면 거의 절대 다수의 개신교도가 보수 복음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신념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일제 치하 때나 한국의 근대화 과정 때는 통했다. 그러나 현재 개신교가 직면한 것은 개신교도들의 세대 교체와 맞물려 반개신교 정서가 사회의 주류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어, 종교적 신념의 보수성이 사회적 존경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신교가 주류 종교가 되려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종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 개신교는 겸손해져야 한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메시아로 추앙될 정도로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최근 30% 대로 곤두박질 친 이유는 최근 한국의 기사를 몇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서강섭   08-05-10 00:11
마틴님의 글이 이번주에도 올라오려냐 하는 기대감에 어느덧 주말이 기다려 집니다.
오늘도 한결같은 정성의 마틴님의 글을 읽어내려 가며 저의 종교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마구마구 살아납니다.

종교라는 것도 역사와 같은 시대성이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시대의 사회상과 문화들과 연관되어 진행되는 종교의 역사라니…

종교가 이렇게 역사성이나 시대성을 가진 것이라면 향후 종교의 진행방향도 당연히 예상이 가능하겠고 발전을 위한 대안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이번 마틴님의 글 처럼 말입니다.

지금 전 정진홍교수님의 책을 읽고있는데요..
그분의 종교학에 대한 고백에 가까운 진솔한 마음을 표현한 글귀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종교학은 어쩌면 불행한 학문입니다. 그 자리에 서면 언제나 두가지 물음에 직면합니다. 하나는 믿지 왜 알려고 하나? 하는 물음이고, 또 하나는 있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알려고 하나? 하는 물음입니다….

종교학은 그 두 물음주체들과 더불어 첨예한 긴장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둘은 종교학이 천형(天刑)처럼 앓고있는 그 긴장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문을 당당하게 제기한 주체들일뿐 입니다….

마치 두 물음은 양쪽에서 다가오는 벽같이 여겨집니다. 그 거대한 벽틈에서 협공을 당하여 급기야 스스로 어떤 생존도 보장할 수 없는 마지막 지경까지 이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마저 때로 느낍니다. 종교학의 자리는 이러합니다. 이러한 삶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무척 우울합니다.

종교를 알겠다는 태도가 종교의 자리에서도, 학문의 자리에서도 승인받을 수 없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은 종교학을 무척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마틴님의 글 중에서 종교학을 바라보는 마틴님의 시각을 적은 글귀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종교학은 개인의 실존적 고민을 좀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학의 대상은 오직 인간의 경험 자료에만 의존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다룰 수 있고 실증할 수 있는 자료만 다룬다는 점에서 신의 존재 , 불교의 열반의 존재 유무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신의 존재유무나 열반의 존재유무는 판단할 수 없지만 (종교학의 영역은 아니지만), 신이 있다 없다 열반이 실재한다 아니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고백의 자료는 분명하기 때문에 종교학은 바로 이런 경험 자료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적 불가지론이란 경험적 자료로 사용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은 판단을 보류하고 의도적으로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런 태도는 종교에 대한 겸손한 태도이며 지적 정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학은 짝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하는 종교 대상에 대해서 자신의 개인적, 실존적, 고백적인 관여를 하고 싶지만 차마 말을 못하고 거리를 두는 태도, 진짜는 그래야 하는 것이지요”

두분의 글속에서 뭔가모를 일관성과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학문도 사람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처럼 외로운 학문이 있군요.

그러나 이러한 종교에 대한 객관적 접근 및 공부가 종교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종교학도의 외로운 정진에 종교계도 공감을 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종교에서 그저 믿지 왜 알려고 하나?라며 종교학에 대해 공허하게 물어오더라도
계속되는 종교학의 정진…

다시한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마틴님.
마틴 김   08-05-10 03:29
서강섭님,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책도 읽고, '생각없이" 던진 이삭같은 말도 이렇게 함께 모아 주시니 송구스러워서 어쩔줄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두 주빼고 거의 매주 글을 쓴 것 같습니다. 13개의 글이지만 그래도 정신없이 흘러온 두어 달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뵙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본업에 더 충실해야 할 것 같고, 또 당분간 너무 바빠 글을 계속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교민 사회에 글을 쓰는데 참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혹시 제 글 때문에 제 글을 싣는 신문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뇌도 많았습니다. 힘든 과정 속에서도 제 글을 실어 주신 알버타 저널에 깊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글 한줄 한줄이 어떤 형태로든 제 글을 싫어하시는 분들께 반응 또는 반행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음에 두고 표현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연관되어 살며, 나의 나됨은 바로 이런 사회와의 상호 관계 그리고 연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고뇌와 외로움의 골은 더 깊어지기도 하고 또 사람사는 의미를 더 깊이 경험하기도 하겠지요. 서강섭님과 같이 '더불어' 읽기를 하시는 분들 때문에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감사드리며... 마틴 올림
서강섭   08-05-10 08:12
다들 꿀맛같은 휴일 늦잠에 빠져있는 토요일 아침일찍
혼자 일어나 거실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컴퓨터를 켭니다.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음악이 들려오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보입니다.

인간은 절대 남에게 설득되지 않는다는 저의 생각이 자꾸 확신으로 가는 슬픈 이야기도 보입니다.
그 설득은 남을 인정하고 용서해 주는 것으로만 가능하리라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아니.. 저 부터라도 남에게 설득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허용한 삶이 이렇게 짧은 이유가 있을텐데요.
그것은 아마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유 일텐데요.
그러나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라는 말조차 건넬시간은 없으면서도..
어떻게 하던지 시간을 내서 자신만의 의견을 주장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현세적이지 않고 세속적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는 일이 아닌것들에 많은 가치를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렇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충(忠) 효(孝) 학(學) 경(敬) 사랑(思量:남을 많이 배려하며 생각할 수록 이는 남을 많이 사랑하는 것..)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시길 너무 외로워 하지 마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세요 마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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