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신뢰와 존경의 회복: 하나의 시론
-마틴김 (캘거리 한인연합교회)
이전 칼럼에도 지적했듯이, 보수적인 종교가 성장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학계에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좀 더 나아가서, 로드니 스탁 (Rodney Stark)같은 사회학자는 그냥 보수적인 종교가 아니라 유일신관 (monotheism)을 갖춘 보수 종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이상형 (ideal type)이다. 이 것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의 용어로서, 글자 그대로 현실적으로 이상형인 남자와 여자를 배우자로 만나기 힘들듯이, 개념적으로 서술된 또는 추상화된 실재가 현실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사회적 실재가 이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타이완의 사례에서 본 종교 성장
필자는 최근 기독교 선교학계에 잘 알려진 선교학 학술지인 Missiology에 타이완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서인Richard Madsen의 Democracy’s Dharma: Religious Renaissance and Political Development in Taiwan (민주주의의 다르마: 타이완의 종교적 부흥과 정치적 발전,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을 서평할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은 한 때 타이완에서 카톨릭 선교사였던 사회학자가 쓴 책으로 타이완의 국민당 정권의 지원을 받았던 기독교는 역동성을 잃고 힘을 펴지 못하는데 반하여, 왜 불교와 도교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부흥을 맞이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불교와 도교가 강한 나라에서 선교의 발판의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던 타이완의 기독교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국민당과 정치적으로 합류하므로써 전통 문화의 강한 저항을 받아 결국 정치적 힘은 물론 종교적 힘도 잃을 수 박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평 안내에는 서평하는 책의 추천 이유를 한 두줄 부가 하라고 요구했는데, 필자는 이 책은 기독교 선교에 ‘실패’한 좋은 사례로서 ‘선교학’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가 힘을 읽게 된 것은 정치적 억압이었다기 보다는 부패한 정치와의 결탁, 기독교인들의 특권적 지위 향유, 그리고 사회적 존경의 상실이 주요한 이유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불교와 도교는 자기 종교에 대한 열정적 신념, 사회적 봉사를 통한 교세 확장, 결과적으로 획득한 사회적 존경으로 최근 수십년간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 한국 천주교의 몰락과 회생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백년전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되었을 때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조선 정부의 처절한 박해로 상당 기간동안 회생활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제사문제였다. 그런데 당시 박해가 얼마나 무서웠느냐 하면 초기 서구 기독교의 순교사와 비교가 되질 않는다. 흔히들 로마 제국 치하에 있었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1천명은 고사하고 수백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 (Rodney 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 1997, pp. 179-80)에 반해, 한국 카톨릭 순교는 단기간에1만명에 이르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순교의 역사였다. 그러므로 초기 서구 기독교 교회사에 조금이라고 아는 목회자들은 순교의 역사를 말하려면 이제 서구의 초대 기독교 순교사보다는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를 언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처럼 강한 종교적 신념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정치 체제 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제사는 유교 사회를 지지하는 주요한 사회 규범체계였기 때문에 제사를 반대하는 행위는 조선 왕조라는 유교 체제의 뿌리를 송드리째 뒤흔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교 체제하에서의 천주교 박해는 종교적 신념보다는 사회 규범과 윤리를 위반한 낯선 종교에 대한 박해의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원인이 어떻든 간에, 천주교 박해는 한국의 종교사의 지도를 뒤바꿔 놓은 결과를 가져 왔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보다 1백년 앞선 천주교는 새로운 도약을 할 기회를 잃고 있었다. 그런 천주교가 최근들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체계적인 선교 정책과 함께 정의사회구제단과 같은 역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쌓고있는 사회적 존경 때문이다.
3. 한국 개신교의 부흥과 정체한국 천주교에 반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성장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가 전래되던 19세기 말에는, 종교적 윤리를 대신하는 유교 체제가 붕괴되고, 불교는 박해를 받아 산중 불교가 된 상태였고, 천주교는 회생의 기회를 상당한 기간동안 가다려야 했던 시기였다. 이런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개신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선교 환경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해방공간과 한국 전쟁 기간동안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의 개신교인들이 대거 남하했고,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개신교는 미국적 교파주의와 분열, 그리고 보수성을 등에 없고 급성장 수 있는 발판을 확실히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개신교의 수는 과거 1천만명을 자랑하던 통계수가 8백만 정도에 머문다는 조심스런 진단이 나오고 있다. 1천만에서 8천만명으로 수가 줄어든 것은 통계상의 허수로도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 개신교의 발전이 정체되었다는 개신교 현장의 소리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과제이지만 시론적으로 세가지 요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국 개신교 자체의 변화
한국 개신교는 현재 교인들의 세대 교체 중에 있다. 한국의 대대적인 이농 현상과 도시화의 지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징조인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인구의 이동 역시 정점에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 개종자들의 수가 는다기 보다는 자기종교 내의 재생산, 즉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종교를 자식들에게 되물려 주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는 초창기의 역동성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 2세대는 결코 제 1세대가 갖는 열심을 따라하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종교든 피할 수 없는 순환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1950-70년대 경험한 전도폭발이라는 그런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둘째, 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의 복귀
종교와 문화적 가치의 속도는 혁명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설령 한국의 개신교가 주류문하인양 거만해 진다하여도 여전히 종교로서의 불교와 유교적 가치가 생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든지 부흥(renaissance)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성장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바로 그 종교가 문화적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형태든 한국 사회가 쉽게 기독교 문화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앞으로 연구 과제이지만 반 기독교 운동(anti-Chrisntian movements)같은 반기독교 정서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며, 이러한 사회적 힘 (social force)이 유지되거나 증대한다면 기존의 개신교 성장에 심각한 도전 또는 저항이 될 것이다.
셋째, 종교가 사회적 인심을 잃으면 성장도 잃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위치는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저항을 받는 위치에 있다. 그 저항이 주류 종교가 갖는 여유만만함의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태로 빠질 수도 있다. 4천만이 넘는 남한 인구에서 8백만명은 결코 주류 문화를 형성할 수 없다. 이 때 받는 사회적 저항은 결국 개신교인 수의 감소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수는 남는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개신교의 성장은 계속 어떤 형태로든 보장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무서운 변수는 개신교를 타겟으로 삼는 세속적 반기독교 정서와 운동이 거세진다면 앞으로 보수적 성향과 열정적인 선교만으로는 개신교 성장의 앞날은 물론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종교적 성장이 보수-진보라는 축으로만 왔다갔다 한다면 한국의 보수 개신교의 성장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 왜냐하면 거의 절대 다수의 개신교도가 보수 복음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신념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일제 치하 때나 한국의 근대화 과정 때는 통했다. 그러나 현재 개신교가 직면한 것은 개신교도들의 세대 교체와 맞물려 반개신교 정서가 사회의 주류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어, 종교적 신념의 보수성이 사회적 존경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신교가 주류 종교가 되려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종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 개신교는 겸손해져야 한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메시아로 추앙될 정도로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최근 30% 대로 곤두박질 친 이유는 최근 한국의 기사를 몇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